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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터뷰] 이민경 한국비서협회 회장의 22년 보좌관 노하우 “정치 하고 싶다면 사람을 목적으로 삼으세요”
작성자 kaap
작성일자 2014-09-26
 
 
[인터뷰] 이민경 한국비서협회 회장의 22년 보좌관 노하우
“정치 하고 싶다면 사람을 목적으로 삼으세요”
“보좌관은 의원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 돼야”
쓴 약 같은 조언할 수 있어
입력 3일전 | 수정 3일전

▲ 22년 동안 국회의원을 보좌한 이민경 한국비서협회 회장이 여성신문과 만나 자신의 이야기를 풀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자기가 하는 일이 정말 국민을 위하고 역사로부터 박수 받는 일인지 자기 점검이 필요합니다. 정치를 하고 싶다면 만나는 사람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삼아야 해요.”
20여 년 넘게 국회의원을 보좌한 이민경(사진) 한국비서협회 회장이 정치를 업으로 삼고 싶은 이들에게 하는 말이다. 그는 1988년 13대 국회에 5급 비서관으로 들어가 7명(이윤자·김동근·정옥순·강숙자·오양순·문희·손범규) 의원을 보좌했다. 보통 정당의 중진 의원이 3선 이상, 12년을 국회에서 보낸다면 이 회장은 20년 넘게 국회 보좌관으로 일한 ‘뼛속까지 보좌관’이었다.
국회에 처음 발을 내디딘 13대 국회는 때마침 국정감사가 처음으로 도입된 때였다. ‘정치’ 빼고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 아무것도 몰랐던 신입 비서관은 5공 청문회를 준비하면서 ‘적성’을 찾았다.
처음부터 국회 보좌진을 꿈꿨던 것은 아니었다.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자마자 결혼했고 전업주부로서 살았다. 그러나 마음속엔 바쁘게 걷는 ‘커리어우먼’을 꿈꿨다고 한다. 전업주부도 얼마 못 가 프리랜서로 각 회사 모니터링단, KBS 방송국 리포터로 일했다.
“리포터로 일할 때는 6개월 비정규직이었는데 보좌진은 4년 비정규직이었죠. 개편 때마다 방송 없어질까 걱정, 국회에서도 4년 후 어떻게 될까 해서 사실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비정규직으로 평생 살아서 그런지 이 긴장감이 좋아요. 그리고 어떤 일이든지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초강력 긍정주의자였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실력이 검증된 자만이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이기도 했다. 걱정보단 닥친 일들을 완벽하게 처리하는 데 집중했다. 이윤자 의원실에서 처음 보좌진 생활을 시작하며 다른 보좌진보다 늦게 시작해 뒤지는 것 같자 국회의원 수첩에 있는 의원 이름과 전화번호를 다 외울 정도로 열심히 했다.
결혼하고 자녀까지 있는 여성의 개인적 삶은 어땠을까. 그는 “한마디로 투쟁사”라고 말했다. 그는 남편 등 가족의 도움이 컸냐는 질문에 “이혼하는 게 복잡하고 일보다 어떤 면에선 더 어렵잖아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열심히 일하는 엄마, 아내, 며느리에게 가족은 점점 가장 든든한 지지자가 돼 주었다. “맨 처음 일할 때는 ‘설치고 다닌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몇 년 지나지 않아 일하는 며느리가 자랑이라고 격려해 주시더라고요”라고 말했다.

▲ 이민경 한국비서협회 회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모신 의원만 7명. 의원을 중심으로 만난 수많은 관계 속에서 상처를 주기도 또 받기도 했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보좌진 직업의 최고의 매력은 형제자매와도 할 수 없는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라며 “의원을 단지 월급 주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하면 자신도 성장을 못 한다”고 강조했다. 때로는 쓴약 같은 조언을 할 수 있으려면 “보좌진은 의원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말로 보좌진의 역할을 강조했다.
국회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의원을 도와 의미 있는 법안도 마련했다. 한국 여성과 결혼한 외국 남성은 국적을 받을 수 없었던 부계혈통주의 국적법을 개정하고, 가정폭력에서 도망쳐 나온 아이들이 주소 이전이 전제돼야 전학이 가능한 기존 시행령을 고쳐 주소 이전 없이 폭력을 입증하면 전학이 가능하도록 했다. 의원과 손발이 잘 맞아 전문 보좌진 양성을 목표로 18대 손범규 의원과는 손범규의 S, 이민경의 L를 따 SL스쿨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기도 했다. 모두 이 회장의 아이디어였고 의원의 신뢰와 지지로 가능한 일들이었다.
그는 지금도 침대 옆에 늘 노트를 펴 놓고 자다가도 일어나 메모를 한다고 했다. 요즘엔 비서협회 회장이자, 순천향대 초빙교수로 전문 비서 양성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그는 말 많고 탈 많은 국회에서 오랫동안 여성 보좌관으로 일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내게 주어진 시시한 작은 일이라도 매순간 최선을 다했다”며 “그러다보니 결국 길이 열리고 원하는 길로 가고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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